항상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우리 엄마.
오늘은 엄마가 태어난지 55번째되는 날이네요.
타지에 나와 살고 있어 엄마 생일날 미역국도 제대로 못 끄려드리고
죄송해요
손수 미역국이라도 끄려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힘든 농사일에 그을린 얼굴, 자꾸만 늘어가는 흰머리,
상처투성이인 손, 숨을 거칠게 내쉬면서 주무시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제 마음이 너무나 아픕니다.
빨리 합격해서 돈 많이 벌면 좋은 보약도 사드리고,
용돈도 많이 드리고 효도하려고 했는데,
벌써 고시공부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도 좋은 결과를 못 드리고….
엄마는 자꾸만 나이가 드시고 아픈 곳만 늘어 가는데
제가 해드릴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맘 아픈 적이 많았어요.
공부하면서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합격해서
첫 월급 받으면 엄마한테 전부 드려야지,
나도 부모님 용돈 한번 드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이겨내곤 했어요.
엄마, 제가 맏이라서 그런지 어릴 때 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기억나요.
그 시절 시집와 가난과 시집살이 때문에
고생 안한 어머님들이 어디 있겠느냐 하시겠지만, 저도 여자지만,
여자로서의 엄마의 일생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순탄한 인생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시절부터 엄마 역할을 도맡아
고달픈 생활을 하다가 결혼해서 새로운 삶을 기대했지만 결혼생활도 더 힘드셨다고….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시동생 2명, 시누이 뒷바라지,
시부모님 시집살이에 더해 큰집 시어른들 시집살이까지….
딸 다섯을 낳자 아들 못 낳는다며 구박받고, 서러워 우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아빠도 무뚝뚝하고 엄하셔서 혼자 많이 외로우셨겠어요.
친정어머니도 안 계셔서 어디 기댈 곳조차 없고….
엄마, 그 때 그 구박과 설움 속에서도 저희 버리시지 않고
가정 잘 지켜주신 것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시절 저희들 구박덩어리였지만,
지금은 다섯 자매 모두 이렇게 예쁘고 착하게 잘 자랐잖아요. 모두 엄마의 사랑 덕분이에요.
할머니께서 당뇨로 입원하셨을 때,
아빠 디스크 수술 하셨을 때도 모두 엄마의 정성으로 잘 넘겼잖아요.
몇 해 전 엄마의 항문암 수술 때 얼마나 많이 마음 조리고 걱정 많이 했는지 아세요?
다행히 수술도 잘 되고 항암치료 후 많이 회복되시긴 했지만,
암과 싸우신 후 더 약해지신 엄마 모습을 볼 때마다 맘이 아프고 속상해요.
그래도 다시 농사일 하시지만, 무리하지 마세요.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지만 잘 이겨냈잖아요.
앞으로 또 어떤 어려운 일들이 닥칠지 모르겠지만,
우리 다섯 자매들, 그리고 막둥이 아들까지 모두 서로 돕고 위해주면
어떤 어려움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엄마, 고시생 딸이 엄마에게 용돈 한 번 드리지도 못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 엄마를 사랑해요.
엄마 앞으로 더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