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 큰딸 희원이에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빠에게 처음으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참 무던한 것 같아요. 맏이라는 특성 그대로 무뚝뚝한 이런 제 모습은 아빠를 꼭 닮았어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금방 눈이라도 올 것처럼 회색빛으로 무겁게 내려 앉았어요. 그 밑으로 보이는 거리의 나무들도 차가운 바람에 잔뜩 웅크리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문득 아빠 생각이 났어요.
기억나세요?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아빠와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의 나뭇잎이 너무 커서 아빠에게 여쭈어 보았었죠. 그 때 아빠는 한참동안 그 나무를 보시고는 하늘나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보면서 무성한 나뭇잎들이 하늘만큼 크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야 그 나무가 플라타너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하늘나무라고 여긴답니다.
지금쯤 아빠는 동해로 가는 고속버스에 앉아 계시겠지요? 직장이 동해에 있어서 평소에는 그곳에서 지내시다가 주말이나 되어서야 집에 오시는 아빠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한주일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요즘 들어 가장으로서 한층 더 무거워진 아빠의 어깨를 자주 보게 되고, 그럴 때마다 제 마음도 무거워진답니다. 제가 그 짐을 더해주었다는 생각에.......
아빠, 요즘 들어 자꾸 어릴 때 모습이 떠오른답니다. 단발머리 깡충이며 아무 걱정 없던 그 때, 아빠는 저에게 거인 같은 모습이었어요. 제가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등 제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해주셨죠. 또 가끔 한가한 주말 오후 시간이면 아빠는 제 손을 잡고 동네에서 가까운 공원으로 데려가셨어요. 그리고 그네를 밀어주시기도 하고 미끄럼틀 밑에서 내려오는 저를 받아주시기도 했었죠.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더 놀고 싶어 하는 저를 달래주느라 업어주셨어요. 아빠 등에 업혀 저를 따라오는 구름을 세곤 했었답니다.
“후회 없이 하렴. 1년 늦게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고 삶이 잘못되는 것은 아니란다. 다만 그 시간동안 네가 최선을 다해서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다른 누가 아닌. 네 자신에게 당당하면 되는 거야. 조금하게 마음먹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하렴,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너는 최선을 다했으리라고 아빠는 믿는다.“
만만치 않은 재수 생활에 힘들어 하는 제 손을 잡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그제서야 그동안 겉으로는 무심한 것 같지만 속으로는 안타까워하시는 아빠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답니다. 그 때 저는 제자리걸음만 하는 성적에 자신감을 잃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아빠에게 경제적으로 무거운 짐만 지우게 한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거든요. 그래도 아빠의 말씀을 기억하며 용기를 갖게 되었답니다.
아빠, 아빠는 저에게 많은 것을 물려 주셨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무뚝뚝하지만 성실해서 늘 변함이 없고, 거짓말 할 줄 모르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잘 버티어 내고.......
경제적으로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도 책상 앞에 앉아있는 저를 보면 다시 주먹을 쥐게 된다는 아빠, 회사일로 피곤해도 환하게 웃는 저를 보면 저절로 기운이 솟는다는 아빠, 저와 같이 걷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진다는 아빠, 아빠, 지금까지 제가 받은 사랑에 보답해드리는 길은 제가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겠죠. 물론 그 후에도 맏이로서 든든한 곁이 되어드리겠어요.